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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SHI] [일경엔터테인먼트-2009년 11월] 오노 사토시, 나의 터닝포인트~!

핑크언니♡ 2009. 10. 19. 23:36

 

 

오노 사토시

3번의 탈퇴계획과 아라시의 10년

28세, 아라시의 최연장 멤버는, 일본 제일의 소극적 리더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맞이한 전기는 언제나 「그만둔다」는 생각과 셋트였다.

10년째에 선 국립경기장에서 울었다. 마음의 변화에 대해 물었다.

  

 

  8월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이 120만장을 돌파. 올해 릴리즈한 3장의 싱글도 다른 아티스트를 크게 뛰어넘은 판매량으로, 그 가운데 2장 (『Believe/曇りのち、快晴』『明日の記憶/Crazy Moon~キミ・ハ・ムテキ』)는 상반기 랭킹 1,2위를 독점. 이것을 크게 웃돌것으로 보이는 릴리즈는 올해 하반기에도 발견되지 않고, 9월 24일 시점에서의 아라시는 앨범과 싱글의 연간 랭킹 2관왕을 손에 넣는것이 거의 확정되어가고 있다.

  밀리언이라고 하는 숫자는 팬만으로는 만들어 지지 않는 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악곡 그 자체가 보통의 팬 이외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쌓여 올라가지 않는다. 판매량이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의 그들의 곡은 쟈니즈 가요나 아이돌 가요의 경계를 넘어, 그다지 팬이 아닌 사람도 손을 뻗을 만큼 일반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오노사토시는, 그 「아라시 사운드」에 놓여,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데뷔곡부터 주선율을 담당했고, 댄스의 레벨도 사무소에서 톱클래스. 국립경기장을 3일간 메운 라이브퍼포먼스의 퀄리티를 지배한 것도 이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라이어티 방송에서는 정신 차리고 보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그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지루하니까」가 아니라「휩쓸리지 않는다」는 타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남자가 인생에서 딱 한가지 휩쓸려 몸을 담아 온것이 「嵐」라는 그룹이다. 쟈니즈 주니어시절, 몇번이나 「사무소를 그만두겠다」라고 쟈니사장에게 말한 것은 팬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 처음의 큰 터닝포인트는 1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두겠다」에 「아아, 그래」

  「그만두겠다」라고 말한것은 98년 (아라시로써 데뷔하기 1년 전). 춤을 추기 위해 교토의 무대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2년동안 해오면서 자기 자신에게 만족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사장님께 전화했습니다. 「교토에서 돌아왔어요. 그래서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사장님도 「아아, 그래」라고 바로 대답하셨어요.

  「그럼, 일단 와봐」라는 사장님의 말에 "마지막 인사"를 상상하고 있던 오노소년이었지만, 말했던 연습실에 도착하자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춤춰봐」라고. (도모토)코이치군의 무대 『MASK』의 연습실이었어요. 「저 그만둘건데요」라고 말했지만, 다음 일이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춤춰버렸네요(웃음). 

 

옛날부터 그림 그리는것을 좋아해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생각이었다.

 진심이었기 때문에, 당시 잡지에서 신세지고 있던 사람에게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코이치군의 무대가 끝나고 3개월정도는 일에 대한 전화가 와도 거절하고, 계속 집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대충대충 넘어가는 건 싫었기 때문에, 다시 사장님께 말했어요. 「그만두겠습니다」라고. 그랬더니 「그럼, 잠깐 레코딩을 도와주지 않을래 ?」라고 말하셔서, 정말로 마지막일로써 갔습니다.

 

레코딩스튜디오에서 건네받은 종이에는 「嵐」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그것이 새로운 그룹의 이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상했어요(웃음).  그러니까 도와주는건데 「오노 솔로파트」라고 써있었으니까. 「뭐에요 이건?」라고 물어보니까 「일단 노래해봐」라고 하시네요. 그래서 다 부르고 나니까, 「다음주에 하와이 갈래?」라고. 보통이라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에 한번, 놀러 데려가 주신적이 있어서, 저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네요. 여러가지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와이는 아라시의 데뷔 회견의 장소였다. 「오노사토시」의 인생은, 크게 변했다.

  역시 하와이까지 가버렸으니 거기서 그만둔다고는 못했네요(웃음). 그래도 저 이외의 멤버도 모두 멍했네요. 제일 멍했던건 아이바(마사키)짱 이었지만.  3일전에 하와이 간다고 들었으니까, 그것도 그랬겠네요(웃음).

  이전, 어느 쟈니즈의 탤런트에게 「데뷔한다는건 어떤것인가」하고 물었더니, 「기억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데뷔로부터 반년정도는 눈이 팽팽 돌정도로, 누구를 만나서 뭘 했는지조차 날아가 버린다고 하는. 오노도 같았다. 머리에 떠오른 것은 3번째가 되는 탈퇴계획.

  특히 첫 2개월동안의 기억은 거의 새하얗네요. 거의 못자는 날뿐이어서 이게 평생 계속되는건가 라고 생각했었네요. 이건 뭐 도망갈 수 밖에 없겠네라고(웃음).

 니노(니노미야 카즈나리)도 같은 생각을 했던 듯, 어느날 화장실에서 진심으로 얘기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그이상으로 어쨌든 눈 앞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였어서, 결국 흐지부지하게 되버렸네요(웃음).

 

 

 기분을 바꿔준 "사건"

 어느쪽이냐고 한다면, 마이너스경향이었던 오노의 기분을 플러스로 바꿔준 것은, 데뷔회견으로부터 1달째의 어느 사건. 쟈니즈 주니어의 도쿄돔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아라시」로써 무대에 섰을 때, 그것은 일어났다.

 멤버가 1명씩 자기소개를 했을 때, 다른 4명은 환성이 높았었는데, 저만 웅성웅성웅성 ... 했었어요. 교토에서 활동했었으니까 지명도가 낮을 거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쇼크로 ....  빨리 돌아가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것 기억하고 있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 날부터 팬레터의 답장을 필사적으로 썼습니다. 어쨌든 그 쯤에는 시간이 있으면 쓰고 있었달까나. 아라시의 라이브에서 조차 조금이라도 다른 멤버를 따라잡지 않으면 이라는 식으로. 그러니까 자기의 이름이 쓰여진 우치와를 발견했을 때, 정말로 안심했습니다....

 아라시는 이번 11월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한다. 명확히 충실했던 개별 활동에 의지했던 「행복한 10주년」이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 망설였던 것도 있었다. 절정은 데뷔로부터 3년째. 데뷔곡이 밀리언을 달성하면서도, 그 후 판매량은 하락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01년 11월, 레코드 회사를 사무소의 신설 레벨 ・JStorm으로 이적, 이듬해 02년에는 같은 회사의 첫 자주제작영화가 아라시 주연으로 개봉되었다. 몇달 전에는 자신들의 이름이 붙은 방송도 시작했다. 보기에는 적극적인 "공격"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듯 싶었지만, 그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 해(02년)의 투어중, 체제하던 곳의 호텔에서 그날의 라이브 영상을 모두 룸서비스를 부탁해가면서 보기로 했었습니다. 보고 난 후였을까, 「우리들,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이야기가 된것은.

 그쯤의 아라시는 일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의 작품이 되어있지 않고, 개성을 어떻게 내보이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소에서도 여러가지 듣던 시기였어서, 거기에서 해결책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한가지 확실해 진 것은, 모두의 기분이 같은 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 그 다음날 부터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쩜 이리 또 조각컷들이 완소인지...^^

 

 

스스로 부탁한 아트전

 오노 개인의 활동으로는, 작년 후반에서부터 올해까지 걸쳐, 큰 움직임이 있었다. 아트전 「FREE STYLE」을 개최한 이외, 『마왕』으로 연속드라마 첫 주연. 계속해서 주연 드라마『우타노 오니상』의 역할명 야노켄타 명의로 곡을 릴리즈 하는등, 여러가지 "타류시합"이 활발하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띈 것이 개인전 「FREE STYLE」. 취미로 만들어 놓았던 오브제나 그림등 200점을 전시해, 전국 5개소를 순회했다. 소속 탤런트의 아트전은 쟈니즈 사무소로써도 첫 시험이다.

 여러가지 했던 일중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하고 싶다」고 사무소에 부탁했던 것이 「FREE STYLE」입니다. 평가를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어쨌든 팬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잡지의 취재등에서 근황을 물었을 때, 저의 대답은 항상 「점토를 만지고 있습니다」였으니까, 「보고 싶어」라는 목소리가 늘어왔습니다. 정말은 조촐한 개인전을 열 생각이었지만, 사무소하고 얘기하던 중 이야기가 커져버렸네요(웃음).

 이 일을 하고 있으면,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아트의 프로분들도 함께 해주셨지만, 역시 저는 취미로 그려왔던것을 정말로 해주시는 걸까나 하고 생각했어요. 본심은 어떻게 생각하려나 하고.

 그래도, 마지막에 그 스탭분들이 「즐거웠다-」고 말해주셨던것이 정말로 기뻤어요. 노래나 버라이어티하고는 또 다른 공기를 맛볼 수 있었던 느낌입니다.

 드라마도 그렇지만, 최근에는 처음뵙는 분과의 일이 많지만, 「오랜만에 즐거운 촬영이었어요」라고 들으면, 무척 행복한 기분이 됩니다. 「아, 나로 괜찮았구나」하고.

 

 "행복한 기분"은 바로 어제도 느꼈다. 8월 28일의 국립경기장 공연 첫날, 마지막 인삿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울어버렸다.  

 콘서트로 운 적은 가끔 있었지만(웃음), 그날은 말하려고 했더니, 웃하고 복받쳐 올라서... 필사적으로 참았지만 7만명을 앞으로 하고, 그 공간에 당한 느낌입니다. 올해의 국립은 절대로 눈에 새기려고 생각했던 탓일까나. 그래도, 어째서 거기까지 올라왔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웃음).

 나중에 니노하고 마츠준(마츠모토준)한테「노린겁니까?」라고 들었어요. 그런 마츠준도 멤버가 인사할 때 꽤 위험했다던 것 같지만(웃음).

 

 "노림" 이었다면, 아이돌적으로는 목소리가 뒤집어질정도의 "울음"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한동안은 그만두는 것만 생각했던 사람이, 10년째에 흘린 행복한 눈물.

 지금까지는, 일에 대해 어딘가 행동하려 하지 않으려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현장에 가면 즐거워지는 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올해 들어서부터네요. 이런 기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보여줄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2년 후 정도일까나. 앞으로도, 이런 페이스로 가겠습니다. 기분에 대한 마음자세는 바뀌었지만, 귀찮아하는 성격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기에(웃음).

 

프라이벳 토크

Q.최근 듣고있는 곡은?

A.노래가 아닌 것을 듣고 있습니다. 바다 소리만 흐르던가, 우클레레 뿐이라든가. 치유계?

Q.오늘은 무엇을 먹을 예정?

A.회가 먹고싶어.

Q.주문하는 술 무엇?

A.맥주를 먹고나서 소주.

Q.반드시 시키는 메뉴는?

A.회. 모듬으로

Q.전화하는 편?

A.안하는 편이랄까.

Q.문자는?

A.오면 하는편. 스스로는 별로 안해

Q.어제의 국립경기장 콘서트. 어떤 우치와가 눈에 띄인 우치와는?

A.(취미가 낚시니까) 「낚아!」라는것이 많았다 (웃음). 낚는 제스쳐를 하면 즐거워 해줘서 여기저기서 했습니다.

Q.자주 보는 TV방송은?

A.낚시 채널.

Q.좋아하는 예술가는?

A.에도새대의 伊藤若冲(이토 쟈쿠츄우). 닭을 그리기 위해 여자한테는 눈길도 안주고 계속 닭만 보고 살았다는듯. 그런 삶의 방식도 포함해서 전부.

Q.오노상, 여자에게 흥미는?

A.저는 있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 리이이다아아아~~~!!! -_-+)

Q.그럼, 여자에게 옷을 골라준다면, 어떤 느낌의 옷을 ?

A.디자인이나, 캐릭터가 초현실적인 것.  변화와 리듬이 있지만 수수한것같은.

  

오노와 아라시의 주요 활동사

94년 쟈니즈 사무소 입소

97년 쟈니즈 주니어의 일원으로써 교토의 무대에서 활동

       (98년 사장에게 2번 사의를 전함)

99년 아라시로써 데뷔 -

       (데뷔곡 『A・RA・SHI』가 밀리언을 달성한 것에, 너무 바쁘자 니노와 탈주계획)

01년 레코드회사를 사무소 자사 레벨 JStorm으로 이적 (아라시)

      첫 레귤러 『한밤중의 아라시』(니혼테레비)스타트 (아라시)

      (리뉴얼을 거듭해 06년에 11시대 『아라시의 숙제군』으로)

02년 『아오키상가의 부인』으로 연극 첫 주연

        (이후 연 1회 페이스로 주연연극)

       『ARASHI - DISCOVERY』(FM요코하마)에서 라디오DJ에

        (전국 투어 중, 멤버와 「아라시」의 이후에 대해 이야기함)

        후지TV의 점심시간대 생방송 사회로 『나마아라시』스타트 (아라시)

04년  『24시간 TV』의 챌린지 퍼스너리티에  (아라시)

(05년 마츠모토가 출연한 『꽃보다 남자』가 대히트)

06년 솔로 콘서트 개최

      대만, 한국에서 아시아투어 (아라시)

      (사쿠라이가 뉴스캐스터에 )

07년 첫 도쿄돔 공연 (아라시)

      싱글 『LOVE SO SWEET』이 40만장을 돌파, 연간 랭킹 4위 (아라시)

      (마츠모토의 『꽃남2』가 대히트, 니노미야가 영화 『이오지마에서의 편지』로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 아이바의

       버라이어티도 궤도에 오르는등, 멤버의 개인 캐릭터가 침투)

08년 아트전 『FREE STLYLE』개최

      (도쿄를 시작으로 전국 5개소 순회)

      22시대에 레귤러 『비밀의 아라시짱』(TBS계)가 시작 (아라시)

      『24시간TV』에서 메인 퍼스너리티에 (아라시)

      첫 국립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대만, 상해에서도 공연 (아라시)   (왜자꾸 한국은 빼는겁니까 -_-)

      『마왕』(TBS계) 으로 연속드라마 첫주연

09년 연속드라마 『우타노 오니상』(TV아사히계) 주연

      (연간 싱글 랭킹에서 1,2위 독점)

      2번째의 국립경기장에서 사상최초 3일간 연속 공연 (아라시)

     베스트 앨범 『All the BEST! 1999-2009』가 120만장 돌파 (아라시)

      (싱글, 앨범으로 연간랭킹 상위가 확정적으로)

      『VS아라시』(후지계) 가 골든에 (아라시)

       후지의 심야드라마 『0호실의 손님』주연 (10월 23일 스타트)

 

 

오노 사토시  1980년 11월 26일생. 도쿄도출신. A형. 13세에 자니즈 입소. 아트계의 첫 일은, 멤버의 초상화를 그린 데뷔기념 악수회 티켓. 04년의 『24시간TV』에서는 자선T셔츠의 디자인을 손수했다. 10월 23일부터 후지계 심야 『0호실의 손님』의 주연. 10월 28일에 아라시의 첫 비디오클립집 『5X10 All the BEST! 1999-2009』가 릴리즈 된다.

 

늘 말없이 조용히...그러나 항상 든든하게 나머지 멤버들을 지탱해주는 울 리다...

좀처럼 인터뷰에서도 말을 잘 안하기때문에 이렇게 속깊은 얘기가 나오는 인터뷰 기사들을 읽을때면

정말 괜시리 찡해지고...감동이 백배네요~~^^

리다가 울 아라시의 리다라서 넘 다행이예요~!! 고마워요~♡

 

출처 : kikinini 님 @ 해피니스

해석 : 잇츠

 

  담아가실때는 댓글을 부탁드려요~~!! ^^

 (사진은 절대 불펌 금지예요~!!)